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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사상가들의 눈에 비친 유교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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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계몽사상가들의 눈에 비친 유교문명/ 고바야시 타이치로 (小林太市郎) 저 ; 김경용 역주.
개인저자소림태시랑小林太市郎
김경용,1962-
발행사항서울: 박영story: 피와이메이트: 박영사, 2017.
형태사항192 p.: 삽화; 25 cm.
원서명支那思想とフランス
ISBN9791188040414
일반주기 부록: 합리적 차등주의와 교육 및 시험제도에 대한 구미(毆美) 지식인들의 인식!
서지주기참고문헌 수록
내용주기중국사상과 유럽사상의 개요 -- 중국문명의 발견과 유럽사상 -- 중국사상이 유럽에 미친 영향
분류기호181.22
언어한국어
바로가기http://www.riss.kr/Keris_abstoc.do?no=14651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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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021028 181.22 고41ㅈ.김 중앙도서관/수원4층(H)/ 대출가능 서가에 없는 책 신고 인쇄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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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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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안내]계몽사상가들의 눈에 비친 유교 문명 -- [출판사 리뷰] [ 000000019950042 | 2018.02.13 ] 3 | 추천 (0)

예스24 발췌 (http://www.yes24.com/24/goods/56832464?scode=032&OzSrank=1)

이 저술을 번역하게 된 것은 등사우의 글[서양의 시험제도에 미친 중국의 영향]을 접한 데에서부터 비롯되었다. 등사우의 이 연구는, 유럽에서 공무원 임용고시제도의 시발이 영국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영국의 공무원 임용고시제도 출범은 중국의 과거제도를 본뜬 데에 따른 것이라는 요지를 담고 있다. 이 글을 접한 이후로 유럽사회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나 유교문명을 알고자 했던 노력의 성과물들을 하나하나 수집하기 시작했고 꾸준히 공부해 나아가고 있다.

고바야시의 이 저술은 그 과정에서 만난 것이다. 등사우의 연구를 접한 덕분에, 상당히 오래 전부터 유교문명이 유럽에 소개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대한 사전이해가 없었다면, 고바야시를 미친놈 취급하며 이 책을 던져버렸을지도 모른다. 동서교섭에 대한 나름대로의 공부가 없었다면 이 책을 황당무계한 헛소리로 가득 찬 것으로 비웃으며 외면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서 간에 활발한 교섭작용이 있었다는 것을 여러모로 확인해 가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이 책도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고바야시의 주장을 모두 다 그대로 수긍하기는 어려웠다. 그의 글은 통상적인 이해를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주장에 전거로 삼은 사료들을 직접 확인해 보기로 했다. 원저에는 주석이 상당히 생략되어 있어서, 당초에는 고바야시가 무엇을 근거로 자기주장을 하는지 그 전모를 파악할 수 없었지만, 이 책의 출간 이전에 저자가 쓴 논문 ?18세기 프랑스에서의 中國觀과 프랑스 사상계에 미친 중국의 영향(상·하)?(十八世紀の佛蘭西に於ける支那觀と其國思想界に及ぼせる支那の影響(上·下), ??支那學?? 第8卷 第2·3號, 1936년 4월·6월)을 발견하고 여기에 비교적 상세한 각주가 달려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것을 참고로 하여 본래 원전에는 생략되어 버린 주석 내용을 상당 부분 복원할 수 있었다.

이들 주석을 추적하여 고바야시의 주장 가운데에 하찮게 여길 수도 있는 세밀한 부분까지 가능한 한 모조리 확인하려고 노력하였으며, 해당 문구까지 찾아내려고 하였다. 원저나 두 편의 논문에 굳이 전거를 제시해 놓지 않을 만한 주장도 추적하여 그 전거를 상당수 확인하였으며 일일이 역주로 제시해 놓았다. 그 결과 고바야시의 주장은 타당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이 역주서는 바로 그런 노력의 소산이며, 여기에 소개해 놓은 삽화나 표지 등은 모두 이 과정에서 본 역주자가 직접 확보한 자료로부터 추출한 것들이다. 고바야시의 책을 접하지 못했다면, 그리고 그의 주장에 타당성을 점검해보겠다고 나서지 않았다면, 이러한 자료들이 생산되어 있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고바야시의 주장에 타당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왜 서구인들이 본 동양을 연구해야 하는지 그 까닭을 정리하게 되었다.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서구인들의 눈에 비친 유교문명·동아시아를 통해서 오히려 서구인들의 당시 삶과 생각을 알 수 있다.
둘째, 그들이 기울인 관심을 통해서 지나치기 쉬운 우리 자신의 소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셋째, 서양이 동양에 대해서, 동양이 서양에 대해서 갖고 있는 잘못된 시각과 인식을 바로잡을 수 있다.
넷째, 결국은 동양이든 서양이든 가릴 것 없이 인류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는 계기가 된다.

남들이 진정 매력으로 여기고 있는 내 자신의 모습이나 특성 등에 대해서 나는 과연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의문을 풀고 정리하는 것도 나에 대해 반성하고, 참된 자아를 인식하는 데에 중요한 과업이다. 그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인간만이 스스로 던질 수 있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노력의 일환이다.

유교사상과 이에 터한 생활양식 등은 지극히 상식적이고 자연스럽고 이성적이고 따라서 보편성이 매우 강하다. 그것은 가家를 출발점으로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교의 상식적·자연적·이성적 특성이나 보편성 때문에, 즉 유교에서 강조하는 것은 어느 곳, 어느 시대에도 있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유럽사회가 유교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았는지 명확하게 밝히기는 불가능 할 것이라고 말하는 인물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인물조차도 유교문명과의 조우로 인하여 유럽사회가 17·18세기에 상상 이상으로 급격한 생활양식의 변모를 겪게 되었고, 그것은 이전과 상당히 다른 것이었다고 인정한다.

유럽사회가 겪은 유교의 영향을 따지는 것은 오래 걸리고 지루한 작업일지는 모르지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유럽사회가 유교의 영향을 얼마만큼 받았는가를 밝히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이런 과제에 임하는 자세와 시각이다. 어느 쪽이 우월하냐를 따지는 것은 무의미하고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해롭다.

이 책에 의하면, 유럽사회는 자연스럽고 상식적이고 이성적이어서 보편성을 가지는 삶의 양식을 영위하는 것이 지극히 곤란한 상황에 오래도록 갇혀 있다가, 동서교섭의 강력한 계기로써 비로소 보편적 삶의 양식의 마당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유럽사회를 뒤덮고 있던 기독교의 암운은 그만큼 매우 특수한 것이었으면서도 동시에 묵직하고 끈질긴 것이었다. 유럽사회의 이런 특수성을 서양인들 스스로 특이하다고 자각할 수 있도록 한 것이 바로 중국문명의 발견이었다. 그리고 그 특수성이 발휘하고 있던 광폭성을 둔화·순화·정화해 나아간 과정이 서양의 근대화 과정이었다고 나는 본다. 그러니까 유럽사회는 유교문명권의 골간인 보편성의 무대로 뒤늦게 진출한 것이다.

당시 유럽인들의 중국이해가 올바른 것이었느냐, 그른 것이었느냐를 검토하는 일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있다. 그 이해가 옳건 그르건, 그렇게 이해한 중국이 장구한 세월이 지나서도 여전히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 서양인들이 그 사실에 접하여 받은 충격의 의미를 고구考究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충격의 정체는 무엇이었는가? 서양인에게는 그것이 왜 충격이었는가? 그들의 그릇된 중국 이해마저도 현금의 인류사를 이해하는 데에 중요한 열쇠가 된다. 문제는 당시에 유럽인들이 이해한 중국의 모습이 실제와 얼마나 부합했는지 여부와 무관하게, 중국의 문명과 그 역사 속에서 그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무엇이었으며, 왜 거기에 주목했느냐는 것이다.

이 책에는 중국사와 양립할 수 없는 역사, 중국사가 동의해 주지 않는 역사는 세계사로 등록될 자격이 의심스럽다는 것을 서양인들이 자각하게 된 과정, 그리고 이 과정에서 서양인들 자신이 갖고 있던 독단적이고 폐쇄적인 세계이해를 스스로 반성하고 재검토하고 정화해 나아간 내력이 실려 있다. 중국에 기독교를 전도하려다가 발생한 예전논쟁은 포교방법론의 문제를 벗어나 유럽사회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밖에 없는 신학적·역사적·학문적 논쟁으로 비화되었다. 이 논쟁은 그 논쟁점이 되었던 문제들이 어떤 결말을 보든지 간에 필연적으로 기독교의 근본, 유럽역사의 정체성, 유럽인들의 세계관 등을 뿌리째 뒤흔드는 계기가 되었다.

유교경전에 나타나 있는 천天이나 상제上帝가 기독교의 초월적이고 인격적인 신(God)과 동일시 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는 중국인이 유신론자인가 아니면 무신론자인가 하는 문제로 번졌고 어느 쪽으로 결론이 나든 기독교는 곤혹스러운 입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상제가 곧 기독교의 신과 같다고 한다면, 중국인에게도 기독교의 하나님이 있다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기독교 사회와 교섭이 거의 없던 지구 반대편에서도 오래 전부터 많은 사람들이 유일신을 숭배하며 풍요롭고 거대한 제국을 건설하여 지금껏 잘 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런 사실은 유대인에게만 신의 계시가 내려졌고, 유럽의 기독교인만이 신의 축복·은총 아래 윤리·도덕·행복을 추구할 수 있다는 신념에 치명적인 타격을 준다.

반대로, 상제를 기독교의 신과 같다고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중국에는 기독교의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없으며 그들이 믿는 것은 미신일 뿐이라고 판정내리는 것이다. 이렇게 중국인들을 무신론자라고 몰아붙이는 것 역시 곤란한 처지에 빠진 기독교를 도울 수 없었다. 기독교의 하나님 없이도 오래 전부터 위대한 문명국가를 건설하여 행복과 윤리·도덕을 추구하였고 대제국으로 발전하여 지금까지도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은, 신의 은총에 의해서만 윤리·도덕적일 수 있고 행복을 누릴 수 있으며 기독교를 떠나서는 이런 추구가 불가능하다는 기독교의 토대를 근원적으로 뒤흔들게 되기 때문이다.

예전논쟁은 중국이 유럽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 아니라, “중국문명의 역사적 현존성”으로 인한 당혹감으로 인해 유럽사회에서 빚어진 자기부정과 자기반성의 계기였다. 중국문명은 있던 그대로 그저 가만히 있었을 뿐이다. 천天이나 상제上帝가 기독교의 초월적 인격신과 같은 것이든 다른 것이든, 중국인들이 기독교와 관련해서 어떤 입장·관계에 있든 상관없이, 정작 큰일이 난 쪽은 기독교 포교대상이었던 중국인·중국사회가 아니라 오히려 기독교를 포교하려 했던 유럽인·유럽사회였다. 예전논쟁의 방향이 어디로 번지고 무엇으로 귀착되든 간에, 이 과정에서 유럽인들은 불가피하게 기독교 교리의 독선적인 오만함이나 자신들 세계관의 협소함과 편벽됨을 뼈저리게 자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상당한 부분에 대해서, 특히 기독교와 얽혀 있는 모든 신념·지식 등을 재검토하고 조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독교의 종교적 도그마를 순화·정화하는 것을 동반한 보편성·합리성의 추구는 이렇게 해서 가능해진 것이다.

기독교의 신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도, 인간의 자연적 천성만으로도 선善과 행복의 추구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인간이해! 당시로서는 위험을 무릅쓴 이런 도발적 시도가 소위 “계몽주의”의 발단은 아니었을까? 계몽주의 시대에 자연철학, 자연종교, 자연도덕 등의 용어에 붙어 있는 “자연적”(natural)이라는 한정사는 “기독교를 전제로 하지 않는”의 의미를 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계몽시대 서구는 동서의 상이성을 인정하고 거기에 자극받음으로써 발전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제국주의 시대에 접어들어서 서구는 저들만의 역사, 그 국지성·독특성을 세계사적 보편성으로 변질시켜 그것으로 ‘동’을 조작·처리해 버림으로써 ‘서’는 ‘서’ 자신도 ‘동’이라는 상대도 모두 옳게 이해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 책의 내용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본다면, 기독교인이 유교 경전에 나타난 천天이나 상제上帝를 기독교의 하느님과 동일시하여 “하느님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가엾은 어린양 우리 인류와 함께 계셨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결국 기독교의 하느님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기독교를 성심성의껏 믿는 것은 좋다. 그러나 믿더라도 이런 엄연한 역사를 알고 나서 믿어야 하지 않을까? 서양의 기독교는 유교문명과의 조우를 통해서 순화되어 갔는데, 유교문명을 방석으로 깔고 앉아 있는 한반도에서 오히려 기독교가 난폭해져 가고 있지는 않은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를 기독교인들 스스로 내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그것은 예전논쟁에 얽힌 신학적·역사적·학문적 문제의 진면목을 잘 모른다는 단순한 사실 때문일 수도 있다.

왜 이렇게 독선적이고 난폭해지고 있는가 하고 자성해야 할 것은 한반도의 기독교뿐만이 아니다. 기독교가 순화됨으로써 발전 가능했던 근대과학은 그 출발점과 배양의 조건을 망각하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본연의 과학에서 크게 벗어나는 데까지 치닫고 있지는 않은가? 과거에 도그마적 기독교가 지상에 암운을 드려놓았던 섬뜩함을 고스란히 그대로 연상시키기에 손색이 없을 만큼 맹위를 떨치고 있는 과학이라는 새로운 종교! 거칠 것 없이 마구 치달리며 흉포화 해가는 과학의 만용과 독선성을 인류는 어떻게 해소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이것도 역시 근대과학의 발전이 어떤 계기로서 가능했는지, 무엇에 대한 반성을 추구한 성과인지, 어떤 사회를 열망하며 이루어졌던 일인지 바르고 정확하게 아는 데서부터 출발할 것이다.

서구의 근대 자연과학이 자신의 합리성만으로 그 존재가치를 인류에게 입증시켰고, 인류는 그것을 수용하게 되었다고 보는 것은 참으로 단순하고 안일한 이해방식이다. 어리석기 짝이 없는 순진한 생각이다. 근대 자연과학의 합리성이 인류의 삶에 가치 있는 것으로 수용하게 되기까지는 과학 이외의 조건 변화가 나타났던(특히 과학적 합리성을 용인할 수 없거나, 용인해서는 안 되는 종교적·사회적 조건에 나타난 변화) 복잡한 사정이 있다. 과학 그 자체에는 인류에게 수용될 만하다거나 그렇지 않다고 판정할 수 있는 기준 같은 것이 들어 있지 않다. 그럴 만한 기준을 과학 안에서는 도출해 낼 수 없다.

돌이켜보아 “굳이 꼭 그랬어야만 했는가?” 하고 지난날을 반성할 줄 모른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다. 제국주의, 침략과 약탈, 제압과 굴복, 전쟁과 살육 등등 최근세 인류의 역사는 광기와 오욕으로 점철되어 있고 그 관성은 아직도 여전하다. 이를 제지하고 인류사의 향방을 다시금 모색할 계기를 고바야시의 저술에서 읽어낼 수 있다면, 그것은 인류문명사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주는 축복일 것이다. 미술사학자였기에 가능했던 그의 시각과 주장은 담백하고 적확하다고 나는 믿는다. 이 번역서와 관련된 내 논문의 한 문단을 소개하면서 역자후기를 마무리하고자 한다.

지금 우리는 여전히 제국주의 패권경쟁의 논리, 문명의 본질에 대한 망각 안에 갇혀서 우리의 과거를 포폄하고 현재 자화상을 그리고 있지는 않은지 면밀히 성찰해 봐야 한다. 아직도 인류문명의 전승?유지?전변 등에 대해 착각과 오해로 점철된 나머지, 수탈과 전쟁으로 얼룩진 19·20세기 비극의 시대 논리에 주저앉아 있으면서도 여기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우리는 폭력과 전쟁을 정당화하거나 부추기는 일을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모르는 사이에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상대와 맞서 싸울 힘을 갖지 못한다면 나를 지킬 수 없다는 제압과 굴복의 논리, 우위와 열세라는 힘(군사력·경제력 모두)의 강약을 기준으로 설정된 목적을 추구하는 일을 교육으로 오인하여 하염없이 매진하고 있는데도 그런 폭력적 난동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서 지속하는 정신적 마비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교육의 목적은 “물리적 힘”이 아닌 다른 것을 기준으로 해야 한다. “무력”을 기준으로 설정된 목적은 절대로 교육의 목적 아니, 인류의 지향점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인류의 지향점은 교육으로써 문명을 이루어나가는, 즉 무武가 아닌 문文으로써 세상을 밝히는(明) 것이어야 한다.

동양과 서양은 어느 쪽도 서로한테 이기거나 진 적이 없다. 양자는 자기 자신을 크게 변화시키지 않을 수 없었던 영향을 서로 주고받은 큰 빚을 제각기 지고 있을 뿐이다. 고바야시가 서문에서 “결국 문화는 하나라는 감상感想에 이르지 않을 수 없다”고 토로한 것처럼, 유교사상이나 과학이나 동서양 모든 인간의 것이다. ‘동’이든 ‘서’든, 인류는 근대과학뿐만 아니라 유교사상의 우산 아래에 있으며 동시에 유교가 추구하는 것과 근대과학이 추구하는 것이 달라야 할 이유가 없다. 종교나 인종, 민족과 국가 간 구별을 떠나, 서로 어우러져 도우며 화목하게 살아 나아가는 인류사회의 고운 미래를 염원한다. 이는 우리의 아이들을 바르게 가르치는 교육으로써만 가능하다.

비록 실천은 담보하지 못하더라도, “리利/불리不利”가 아닌 “의義/불의不義”를 기준으로 살아가는 삶의 길이 마땅하다고 모두가 동의하는 세상, 아직까지 그런 세상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인류가 오늘도 전쟁을 준비하거나 일삼고 있는 것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내 마음에 들고 이익이 될 만한 것이라도 옳지 않다면 반드시 기피해야 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고 손해가 날 만한 것이라도 옳다면 기어이 감행하는 삶에 길을 닦아 나아가고, 타인도 이 길을 걷도록 권고하는 일이 곧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배움(學)과 물음(問)의 길잡이요 인류문명의 바탕이다. 아직 인류는 문명세를 이루었다고 볼 수 없으며 문文으로써 밝은(明) 세상은 인류의 영원한 추구대상이다.

유교무류有敎無類! 종교·인종·민족·국가와 무관하게 차별 없이 더불어 잘 살아 나아가는 고운 세상을 만들자고 우리의 아이들을 가르친다면 결국 우리는 그런 고운 세상에 있는(내가 죽고 나서라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무 근거 없는 순진한 믿음일지도 모르지만 반드시 그리 될 것이라고 ··· . 그리 가르치면 그런 세상이 온다!

2000년 여름에 초역을 해 두었고 틈틈이 수정·보완 작업을 거듭하여 17년만에 이 번역서를 세상에 내놓게 되었다. 열악한 출판환경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선보일 수 있도록 해 준 박영스토리 편집진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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