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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단행본
서명/저자사항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 황보석 옮김.
개인저자Uhlman, Fred
황보석
발행사항파주: 열린책들, 2017.
형태사항158 p.; 20 cm.
원서명Reunion
ISBN9788932918143
초록나치즘의 시대를 다룬 가장 밀도 있는 작품 중 하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르 몽드』
일반주제명영미소설
분류기호823
언어한국어
바로가기http://www.riss.kr/Keris_abstoc.do?no=1441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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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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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즘의 시대를 다룬 가장 밀도 있는 작품 중 하나. 청소년 독자들에게 망설임 없이 권할 수 있는 아름다운 소설이다. 『르 몽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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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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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가치 [ 000000202013794 | 2021.08.31 ] 5 | 추천 (1)  댓글달기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프레드 울만이 쓴 <동급생>의 첫 문장이다. <동급생>은 193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유대인 소년과 독일 귀족 소년의 우정을 그린 소설으로, 1971년에 출판된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주인공인 한스는 유대계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난 학생으로, 우정에 대한 낭만적인 환상이 있음에도 같은 반 아이들과는 깊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면서 외톨이를 자처하는 인물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소년이 전학을 오게 되고, 한스는 그 소년의 자기소개를 들으며 그가 역사책 속의 위인들과 같은 집안의 구성원이라는 점에 매료된다. 한스가 콘라딘을 자랑스럽게, 또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볼 수 있었던 이유는 콘라딘이 자신의 조국, 독일의 역사 속 명예를 상징하는 집안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한스를 포함한 한스의 가족은 자신들이 슈트가르트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사람들이었다. 한 예로, 집에 찾아온 시온주의자와 대화하던 아버지는 히틀러에 대해 '일시적인 질병이며 경제 상황이 나아지기만 하면 바로 사라질 일종의 홍역' 이라고 대꾸한다. 이러한 예측과는 다르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독일의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지고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에서도 점점 균열의 조짐이 보이기 시작한다. 
 두 소년은 첫 만남 이후로 점점 친해져 서로의 집에 놀러가기도 하고, 서로의 수집품을 같이 구경하는 사이까지 발전했지만 이상하게도 콘라딘은 한 번도 부모님에게 정식으로 한스를 소개해주지 않는다. 한스는 친한 친구가 자신을 부끄러워한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혀 콘라딘과 말다툼을 하게 되고, 콘라딘은 격앙된 상태에서 어머니가 유대인을 싫어하신다는 것, 한스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같이 노는 것마저 못마땅하게 느끼신다는 점을 고백한다. 이후 한스는 콘라딘과의 우정이 예전 같을 수 없다는 점을 느끼고, 독일 내의 유대인 탄압이 점점 심해져 미국으로 대피하게 된다. 

 소재에서부터 짐작할 수 있듯이,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이미 알고 있는 결말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우정이 더욱 아름답고 안타깝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스와 콘라딘이 처한 상황적 특수성 때문인데, 특히나 서로의 수집품을 자랑하고 다양한 주제에 대해 토론하는, 지극히 평범한 친구 관계인 그들의 모습은 만약 두 소년이 1930년대 독일이 아닌 다른 장소, 다른 시간에서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까지도 해보게 만든다.
 작가인 프레드 울만은 개인전까지 열었던 화가였다. 그러한 능력을 소설에서도 발휘하여 적재적소에 꼭 필요한 이야기만을 써넣어 전체적인 스토리가 조화롭고 자연스럽도록 그려냈을 뿐만 아니라 마지막 문장은 나치 시대를 그려낸 여러 문학, 영화 중에서도 걸작이라고 말할 만큼 독자에게 강한 울림을 준다. 마지막 문장을 읽은 독자는 마치 그림을 감상하던 관람객이 그림 속에서 여러 정보를 탐욕스럽게 찾아내듯이 소설의 처음부터 끝까지를 꼼꼼하게 뜯어보게 만든다. 그는 1901년 독일 슈트가르트의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태어났으나 히틀러 집권 이후 1933년에 독일을 떠나게 된다. 동급생이 프레드 울만의 자전적 소설이라고 소개하기는 주인공들의 나이와 차이가 있지만, 나치 집권 시대에 독일에 거주했던 경험과 중산층 유대계 가정에서 자라온 만큼 작가의 개인적인 경험과 가치관이 적절하게 녹아든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첫문장인, "그는 1932년 2월에 내 삶으로 들어와서, 다시는 떠나지 않았다." 로부터, 한스와 콘라딘의 물리적인 거리는 떨어졌을 지 몰라도, 그들은 서로를 마음으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았던 것, 못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그들이 그 시대, 그 장소가 아닌 다른 시대, 다른 장소에서 만났다면, 물리적 거리도 계속해서 가까워졌을 테지만요.^^

작가 자신이 직접 경험한 이야기인 만큼 두 친구의 우정이 돋보이는 책 같습니다. 중간에 발생하는 고난만 잘 극복하거나 글 쓴 분께서 언급하신 것처럼 다른 시간, 장소에서 만났을 둘을 상상하게 됩니다.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주의, 결말부터 읽지 마세요. [ 000000201610417 | 2020.10.31 ] 4 | 추천 (0)  댓글달기

  독일의 슈투트가르트에 사는 한스는 유대인이다. 그러나 한스는 유대교를 믿지 않으며 오히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을 받는다. 놀랍게도 한스에게 가장 친한 친구는 독일 장군의 아들이자 백작인 콘라딘이다. 두 사람의 인연은 콘라딘의 전학과 함께 시작이 된다. 두 사람은 운명이라도 되는 양 빠르게 친해지지만, 문제가 있다. 한스의 아버지는 16살 난 아들의 친구에게 ‘백작님’이라고 부르며 뒷굽을 딱 붙인 채 서서 아들 친구와 한다고 보이지 않는 대화를 한다. 콘라딘은 한스를 가족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유대인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들이 모여 친구의 우정은 깨지고 만다. 동시에 독일의 나치즘이 슈바벤까지 확산된다. 유대인에 대한 반감은 커져가고 한스는 어쩔 수 없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그곳에서 30년이 넘는 세월을 보낸 한스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산화한 동창을 기리는 추모비 건립에 기부’해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이 책은 마지막 한 줄로 유명한 소설이다. 절대 마지막 문장을 먼저 읽어서는 안 된다는 암묵적인 규칙이 있다. 독일인과 유대인의 우정을 그린 이야기는 많다. 하지만 그 안에서 희망을 잃어버리는 얘기들도 많다. 예컨대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은 ‘이런 결말을 만들면 안 된다는 법’을 만들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다르다. 오히려 희망을 찾게 된다. 잔인하고 더 이상 세상에 없을 법한 엄청난 비극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며 결말에는 엄청난 반전으로 희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나도 마지막 한 줄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겠다. 솔직히 나는 반전을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덕분에 엄청난 상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었다.

  이 책은 아름다운 언어로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을 그린다. 독일인이자 나치당원인 아버지를 둔 콘라딘과, ‘첫째로 슈바벤 사람이었고, 그 다음은 독일인이었고, 그 다음이 유대인이었다’고 생각하는 한스의 우정은 안타깝지만 모든 것을 초월하지 못했다. 분명 둘은 종교, 인종을 떠나서 마음이 잘 맞는 친구였으며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심지어 한 번 삶에 들어온 후부터 다시는 떠나지 않는 ‘우정의 이상형’이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인과 유대인이라는 모태적인 문제가 이를 갈라놓을 수밖에 없는 시대였다.

 

  <내가 그를 위해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친구>라고 쓰기 전에 나는 잠시 망설였다. 그러나 30년이 지난 뒤에도 나는 이것이 결코 과장이 아니었으며 내가 친구를 위해 ―그야말로 기뻐하며―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고 믿는다. 독일을 위해 죽는 것이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고 당연하게 여겼듯, 나는 친구를 위해 죽는 것도 달콤하고 옳은 일이라는 데에 동의했을 터였다.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령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 38p. 한스가 콘라딘을 회상하며 어떤 친구였는가에 대해 작성한 내용.

 

  하지만 이는 한스에게만이 아니다. 콘라딘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는 결말에서 우리에게 엄청난 반전을 주며 나타난다. 콘라딘은 한스를 통해 신의 존재를 의심하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목사님의 이야기를 듣고 온 콘라딘은 다시금 자신의 믿음을 다지게 되었다. 물론 이때까지는 한스에게 받은 영향을 콘라딘이 깨닫지 못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콘라딘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을 준다.

 

  아마도 어느 날엔가는 우리의 길이 다시 서로 만나겠지. 언제까지나 항상 너를 기억할게, 친애하는 한스! 너는 내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어. 나에게 생각하는 법과 의심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고 의심을 통해 우리 주님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는 법도 가르쳐 주었어. -138p. 콘라딘이 미국으로 떠나는 한스에게 쓴 편지의 내용 중 일부.

 

  하지만 독일의 탄압이 계속되는 상황이 도심에서 슈투트가르트까지 도달한다. 그리고 히틀러를 신봉하는 콘라딘의 모습에 한스는 콘라딘과의 우정을 더 이상 쌓을 수 없게 된다. 한스는 유대인이지만 유대교를 믿지 않고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심지어 이스라엘이나 팔레스타인은 잘 알지도 못하고 독일에서만 태어나고 살아왔다. 그럼에도 한스가 가장 마지막 정체성으로 삼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한스네 가족을 비극으로 이끈다.

  학교의 모습을 통해서도 독일 내에서 유대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알 수 있다. 괴롭힘없이 단지 친구가 없을 뿐이었던 한스가 이제는 독일 밖으로 나가라는 이야기를 듣는 지경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유대인이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조그만 유대놈아 ― 우리는 네게 작별을 고한다

   네놈이 지옥에서 모세하고 이삭과 만나기를.

 

   조그만 유대놈아 ― 네놈은 어디에 있을 것이냐?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다른 유대놈들과 합칠 것이냐?

 

   조그만 유대놈아 ― 다시는 돌아오지 마라

   안 그러면 네놈의 모가지를 부러뜨릴 테니까. -136p. 한스를 괴롭히던 볼라허와 슐츠가 쓴 편지

 

  이 책은 1930년대 두 소년의 우정만을 그린 것이 아니다. 희망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당대에는 더 심했지만 차별에 관한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늘 희망을 엿본다. ‘Black Lives Matter’와 같은 일들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태생적인 일을 문제 삼고 차별하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늘 더 나아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 여기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작품은 마지막 한 줄로 많은 이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것을 알려 준다.

 

  최악의 것에 언제나 의지할 수는 없고, 저주받은 것들 가운데는 항상 정의가 있으며 그 정의는 마지막 순간에 하느님이 어둠 속에서 끌어올린다는 것.

- 장 도르메송의 서문. 책을 다 읽고 난 뒤, 다시 서문을 본다면 새롭게 보일 것이다.

[심사평1]
나치즘과 홀로코스트의 시대를 다룬 소설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지금까지 널리 읽히는 책중의 하나이지요..  좋은책 추천 감사드립니다.

[심사평2]
서평 대상이 소설로 내용을 소개해주는 면이 좀 많이 할당된 듯 합니다.  퇴고 과정을 몇번 더 하시면 더 좋은 문장이 될 거 같습니다. 최근에 일어나 미국의 사건을 일례로 비교한것이 더 좋은 글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심사평3]
 동급생을 처음 읽었을때, 그 마지막 문장에서 오는 쭈뼛함을 아직도 기억하고있습니다. 도서의 반전을을 적절히 언급하여 궁금증을 유발시키는 재미있는 서평이었습니다. 다만 서평이 도서의 내용 위주로 채워져 있어서 도서와 관련된 객관적 정보들(저자가 개인전까지 열었던 화가였던 점, 모국어로 책을 쓰지 않은 점 등)도 함께 다루면 더 좋았을 것 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단순히 두 소년의 우정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아픔까지도 담겨있는 책인것 같습니다. 마지막 문장이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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